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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반룡사 중 영남의 고찰
전통사찰 등록번호 : 가-7
주소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2번지
구룡산 반룡사는 신라 무열왕 7(661)년 경에 이 지역
출신
성사 원효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서, 창건 당시는
신라 삼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하기 위한 호국도량으로,
우리나라 3대 반룡사 중 영남의 고찰로 알려지고 있다.
구룡산을 아우르는 반룡산은 신라시대부터 신라와 당시 압독국(지금의 경산)이 동반관계를 이루면서 신라 제 5대 파사왕, 제 6대
지마왕, 제 7대 일성왕이 삼한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또 642년, 653년에는 김유신과 김인문이 압량주(지금의 경산)의 군주와 총관
으로 부임하면서, 제 29대 태종무열왕은 압량에 주병을 모아 백제 대 정벌에 참여하였던 주 입성 통로로
이 고개를 왕재라 하였다.
고려시대 원응국사(1051~1144)가 운문사를 중창하고 문득 반룡산하에 이르러 빈산의 칡넝쿨을 걷어내고, 허물어진 사지를 일으켜
신흥사라 하자, 전국에 수많은 석학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때 당대의 석학 이인로(1152~1220)
또한 반룡사에서 낙조의
아름다움을 엮은 산거라는 시를 통하여 산사의 고즈넉함을 애절하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1637년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복현되자 초대현감 임선백(1637~1641)은 이 모두가 선현의 공덕이라 하여 옛 조사와 성사의 은덕을
찾아 구룡산 아래 허물어진 사지를 일으키고 조선 인조 14(1641)년에 계운, 명언으로 하여금 선당을 세우게 하여, 이로써 60여년에
걸쳐 27대의 현감에 이르도록 무려 5개의 암자(내원암, 벽운암, 대적암, 은선암, 안적암)와 26동의 대가람을 완성하니 이에 반룡이
승격한 격이라 이름하여 반룡사라 하였다.
임진왜란과 몇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웅장했던 옛 가람은 소실 되었으나 현재사찰은 1997년 이후 복원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